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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친절한 의사와 환자-보호자에게 친절한 의사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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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잠을 두 세시간 밖에 자지 못하던 시절, 당직실 문 앞에 남루한 복장의 아저씨 한 분이 음료수가 든 봉지를 든 채 서성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서 계셨는지 음료수 봉지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최소한 두 시간 이상 기다리신 것 같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사고로 입원해 응급 수술을 한 ???씨 보호자라고 했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그러니 응급수술이 잘 됐으면 퇴원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조르는 것이 아닌가. 전날 진료비청구서를 받았는데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시며 계속 비싼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할텐데 더 많은 치료비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며 울먹였다. 그래서 우선은 비싼 항생제는 밖에서 사와서 맞을 수 있도록 해드렸다. 나머지 처치도 외래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서 부담을 줄여드리기로 했다.
 
이렇듯 30여년 전엔 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확대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가 진료할 때 환자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었는지 아닌지가 무척 중요했다. 보험이 없는 분들의 병원비비가 의사가 보기에도 너무 많이 나와서 치료를 할 때 신경을 써야 했다.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엔 진료비가 너무 많이 나올 것을 걱정하면서 부담을 줄여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는 최소화한다든지, 꼭 써야 할 고가 약품이면 처방료와 진찰료를 줄여주기 위해 밖에서 사오도록 한다든지, 혹시 고가의 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엔 환자와 보호자에게 왜 해당 검사가 꼭 필요한 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수련의사에게도 중요한 업무였다.
 
회진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고가의 약이나 검사를 처방하고 꼭 필요하다는 확실한 학문적 이유를 주임 교수님께 설명하지 못하면 실력없고 공부하지 않는 수련의로 낙인찍혔다. 또 환자의 진료비 걱정을 해주지 않는 비정한 의사, 병원 매상이나 올리려는 장사꾼 같은 의사로 오인될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특히 당시로선 최신 진단방법인 CT를 찍으려면, 다른 검사로는 진단할 수 없는 이유를 각 진단법의 한계를 설명하며 CT 촬영이 불가피한 이유를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해서 큰 부담이 됐다.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당장 “너희 가족이라도 CT를 찍을거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 시절엔 입원 환자가 생기면 첫 검사를 어떻게 최소화해서 첫 진단명을 제대로 정하느냐 하는 것이 주임 교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첫 걸음이었다.
 
환자에게 증상이나 경과를 상세히 물어야 했고, 책을 찾거나 혹은 피곤해하는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서 충분한 자료와 지식을 가져야 처방과 진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검사 하나하나에 뚜렷한 이유와 알고자하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시엔 의료보험증이 비싸고 좋은 약이나 진단도 서슴없이 받을 수 있는 마패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제법 흘러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 과장으로 있던 시절, 누구라고 하면 모두가 알만한 환자가 찾아왔다. 술에 취해 넘어져서 코를 다쳤다고 했다. 환자의 부탁은 “이왕 본의 아니게 입원하게 됐으니,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평소에 간강검진도 못받아 봤으니 이 참에 모든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이었다. 그 부탁을 거절하면 환자가 의심스러워하고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진찰받을 권리를 무시하는 이상한 의사가 될 상황이었다. 어차피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환자여서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이처럼 의료혜택에 대한 개념이 바뀐 이후엔 환자가 입원하면 거의 모든 검사를 몽땅 처방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진단명을 정한 후 거기에 따라 치료하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됐다. 기왕지사 입원을 하게 됐으니, 가능하다면 모든 검사를 다 해보고 확인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게 됐다. 의료보험이 안되는 일반환자는 병원에서 돈을 많이 받으니 비싸고 좋은 약과 진단을 해줬다. 반면 의료보험 환자는 싸구려 약에 진료도 대충 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의료보험 안 돼도 괜찮으니 좋은 약 처방과 검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오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제는 거의 모든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보험 수가는 싸고 국민소득은 높아져 건강에 대한 관심과 건강보험 기대치가 워낙 높아졌다. 의사 입장에선 진료비가 비쌌던 과거에 환자의 병을 고민하며 환자 걱정을 더 해주고, 의사 본분에 더 충실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의사는 과연 무엇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해야 할까 고민해본다. 그럴 때면 의사 출신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한심석 박사님께서 필자가 갓 의과대학 입학했을 때 선친을 통해 들려주신 말씀이 더욱 생각난다. “의사는 병에 친절해야지 환자나 보호자에게 친절하면 도독놈이 된다.”

[글 = 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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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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